기원후 896년, 성 이슈트반 1세가 가톨릭을 받아들이면서 건국한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금빛으로 수놓아진 아름다운 야경과 함께 많은 전쟁의 아픈 기억이 공존하는 유럽에서 10번째로 큰 유서깊은 도시입니다. 다양한 매력을 가진 이 도시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윤스테이 부다페스트 주변에는 어떤 관광지들이 있는지 여러분들께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 데악 페렌츠 광장 : 도보 2분
∙ 도하니 거리 교회 : 도보 5분
∙ 바치 거리 : 도보 5분
∙ 성 이슈트반 대성당 : 도보 6분
∙ 국립 박물관 : 도보 11분
∙ 세체니 다리 : 도보 12분
∙ 그레이트 마켓 홀 : 도보 18분 또는 트램 이용 7분
∙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 : 도보 18분 또는 지하철 이용 10분
∙ 테러 하우스 : 도보 19분 또는 지하철 이용 11분
∙ 국회의사당 : 도보 20분 또는 지하철 이용 10분
∙ 어부의 요새 : 도보 27분 또는 버스 이용 13분
∙ 부다성 : 도보 27분 또는 버스 이용 15분
∙ 겔레르트 언덕 : 도보 33분 또는 트램 이용 11분
∙ 세체니 온천(시민공원, 영웅광장) : 도보 43분 또는 지하철 이용 15분
부다성 Buda Castle (Buda vár)
부다성은 1265 년에 완공된 헝가리 국왕들이 살았던 유서 깊은 성입니다. 과거에는 왕궁(Királyi-palota) 혹은 왕성(Királyi Vár) 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부다 성은 중세와 바로크, 19세기 양식의 가옥들과 공공건물들로 유명한 옛 성곽 지역 옆에 있는 부다 언덕 남쪽 꼭대기에 지어졌습니다. 이곳은 1987년 공표된 부다페스트 세계문화유산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왕의 거처이며 정치/문화의 중심지였지만, 현재는 국립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고 일부는 2만 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세체니 도서관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마리아 테레사(Maria Theresa)와 프란츠 요셉(Franz Joseph) 시대의 중세 왕궁 내부는 팔라티널 크립트(Palatinal Crypt)를 제외하고 제 2차 세계대전 전후에 대부분 파괴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중세 시대와 바로크 시대의 인테리어에 관한 정보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20세기 초에 세워진 궁전에 대한 기록만이 세밀한 묘사와 사진 자료 그리고 평면도 등으로 자세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건축가 하우스만(Alajos Hauszmann)은 이 왕실 건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베르사유 궁전을 제외하고 유럽 전 대륙의 비슷한 왕실 건물보다 200m 더 긴 길이의 왕궁을 만들었다." 전후 기간인 1958년부터 1962년에 부다성을 재건하는 동안 중세 시대의 방 일부가 발굴되었고 이들은 현재 부다 성의 "건물 E"에 있는 부다페스트 역사 박물관에서 영구 전시되고 있습니다.
세체니 다리 Széchenyi Chain Bridge (Széchenyi lánchíd)
세체니 다리는 1849년에 완공된 도나우 강을 사이에 두고 서쪽 부다 지역과 동쪽 페스트 지역을 잇는 다리입니다. 영국의 엔지니어 윌리엄 티어니 클락(William Tierney Clark)이 설계하고 스코틀랜드의 엔지니어 아담 클라크(Adam Clark)가 제작하여 부다페스트 최초로 도나우 강 양쪽을 영구적으로 연결한 다리로, 폭 14.8m에 길이 375m, 2천 톤의 중량이 높이 48m인 두개 교탑에 사슬형 철재로 매달려있는 현수교입니다. 부다 지역의 아담 클락 광장/부다성 푸니쿨라 부근과 페스트 지역의 그레샴 팔라스(현 포시즌 호텔)/헝가리 과학 아카데미/루즈벨트 광장 부근을 잇고 있습니다.
다리는 건설의 주요 후원자인 이슈트반 세체니 백작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조물로 평가된 유연한 형태의 주 케이블 곡선 위에 달려 있는 전구의 모습이 마치 사슬처럼 보인다 하여 사슬 다리(chain bridge)라는 이름이 함께 붙여졌습니다. 당시 세계 최장이던 202m의 중간 단일 스팬은 헝가리의 기술력과 국력을 과시하는 증표로 명성을 날렸다고 합니다. 초기 건설의 목적대로 경제/사회/문화적으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고 그 결과로 다리 완성 24년 후인 1873년,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이 병합되면서 국가 발전과 동서 간 연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14년에 보강을 거쳤지만 아쉽게도 제 2차 세계 대전 중인 1945년 1월 18일에 독일군이 퇴각하면서 주요 타워만을 남기고 폭파하여 사용할 수 없게 되었던 세체니 다리는 4년이 지난 1949년이 되어서야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복구되었습니다. 다리 입구에는 조각가 먀르샬코(János Marschalkó)에 의해 돌로 만들어진 3m 크기의 거대한 사자상이 1852년에 설치 되었습니다. 이 사자에는 혀가 없다는 말이 널리 퍼져 조롱을 견디다 못한 조각가가 도나우 강에 투신자살 했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는데, 실제로는 혀가 있으며 조각가도 생존 했었다고 합니다.
겔레르트 언덕 Gellert Hill (Gellért-Hegy)
한국에서는 겔레르트 언덕(Gellért-Hegy)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현지에서는 시타델라(Citadella)라고 불리는 이곳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속하는 곳입니다. 시타델라는 원래 요새를 뜻하는 헝가리어로, 현재는 겔레르트 언덕 꼭대기에 있는 요새만을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848년 헝가리 혁명 이후 에마뉘엘 지타(Emmanuel Zitta)와 페렌츠 카셀리크(Ferenc Kasselik)에 의해 디자인되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휘관 줄리어스 제이콥 폰 하이노(Julius Jacob von Haynau)가 234m의 고원지대인 겔레르트 언덕에 1854년 완공 하였습니다. 요새는 길이 220m, 너비 60m, 높이 4m, 벽 두께 3m 인 중앙 안뜰을 가지고 있는 U자 형 구조이며 60문의 대포를 보유할 수 있습니다.
요새 꼭대기에서 부다페스트와 도나우 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만큼 군사적 요충지였던 이곳은 헝가리인에게 아픈 근대사의 기억이 모인 장소입니다. 합스부르크 제국 식민지 당시 헝가리인들을 강제 동원하여 완공한 이후 1854년 6월부터 오스트리아 군대가 독립운동 감시용으로 요새에 정착했습니다. 이후 헝가리인들이 1899년 말이 되어서야 요새를 되찾을 수 있었지만 제 2차 세계대전 기간에 독일군이 요새에 방공포대를 설치했고 일부분은 전범수용소로 이용했습니다. 그러다 1944년 소련군이 침공하여 독일은 이 요새에서 최후의 방어전을 펼쳤으나 끝내 패배하였고, 소련은 그 기념으로 1947년에 높이 40m의 '자유의 여신상'을 세웠습니다. 이 소녀는 두 팔을 지켜든 채 승리를 뜻하는 종려나무 잎사귀를 펼쳐 들고 있는데 이는 '소련군이 마침내 승리했다'는 징표라고 합니다. 이후 공산진영이 무너지면서 이 소녀상에 대한 철거가 논란이 되었지만 아픈 과거에 대한 기억과 잘못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남겨 두었다고합니다.
페스트 지역에서 엘리자베스 다리를 건너다보면 겔레르트 언덕의 중간쯤에 거대한 석상이 도나우 강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가 이 언덕의 주인공이자 수호신인 성 겔레르트입니다. 4m 높이의 이 동상은 헝가리 건축가 쉬트로블(Zsigmond KisfaludyStrobl)의 종전 기념 작품입니다. 성 겔레르트는 본래 이탈리아의 베네딕트 수도회 수사로 본명은 지라르도(Girardo)입니다. 베네치아에 있던 성 조르지오(St.Giorgio) 수도원 원장을 역임하는 등 당시 로마 가톨릭의 거물이었던 그는 헝가리의 이슈트반왕을 도와 헝가리인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려는 의도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러다 1045년 기독교화에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킨 이교도들에게 붙잡혔서 못이 촘촘히 박힌 둥근 통 속에 갇힌 채 언덕에서 도나우 강으로 굴려졌습니다. 이렇게 헝가리 최초의 순교자가 탄생하였고 성 겔레르트 동상은 그가 통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이했던 바로 그 언덕에 세워진 것입니다.
국회의사당 Hungarian Parliament (Országház)
헝가리의 국회의사당은 영국 국회의사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규모가 큰 국회의사당으로 성이슈트반 성당과 함께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은 건물입니다. 1896년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계획되어 1904년에 완공된 국회의사당은 약 100,000 명의 사람들이 건설에 관여했으며, 4천만 개의 벽돌 , 50만 개의 원석 및 40kg의 금이 사용되었습니다. 외벽에는 헝가리 역대 통치자 88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지붕에는 1년 365일을 상징하는 365개의 첨탑이 있습니다. 내부에는 총 691개의 집무실이 있으며, 카펫의 길이를 모두 합치면 무려 3,456m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입니다. 김춘수 시인의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배경이 바로 이곳 앞에 있는 코슈트 광장입니다. 1956년 혁명 당시 부다페스트 대학생과 시민들이 소련군의 철수와 헝가리의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연좌데모를 벌이다가 소련군의 총탄에 쓰러져간 곳으로, 헝가리 민주의회정치의 현장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어부의 요새 Fisherman's Bastion (Halászbástya)
부다성 북쪽의 마차시 교회(Matthias Church)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신 고딕 양식 및 신 로마네스 양식의 요새입니다. 이곳 역시 건국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1895년과 1902년 사이에 프리게스 슐레크(Frigyes Schulek)의 계획에 따라 설계되고 건설되었습니다. 이후 제 2차 세계 대전 중 거의 파괴 된 어부의 요새는 1947년부터 1948년까지 다시 그의 아들에 의해 복원되었습니다. 많은 계단과 산책로가 있는 어부의 요새에서는 도나우강과 머르기트섬은 물론이고 동쪽의 페스트 지역과 남쪽의 겔레르트 언덕까지를 모두 조망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부다페스트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을 요새 성곽 사이로 바라볼 수 있는 탓에 밤이되면 수많은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스팟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헝가리 애국정신의 한 상징으로 19세기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고 있을 때 도나우강의 어부들이 강을 건너 기습하는 적을 막기 위해 이 요새를 방어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중세에는 어부들이 도나우강에서 왕궁 지구에 있는 어시장으로 가는 지름길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동양적인 색깔이 짙은 고깔모자 모양을 한 일곱 개의 탑은 896년 건국 당시의 마쟈르 7부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전체가 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도나우강과 어우러진 하얀 색의 성벽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세체니 온천 Széchenyi thermal bath (Széchenyi gyógyfürdő)
헝가리 특히 부다페스트는 역사적으로 온천이 매우 유명한 지역으로 이 중 세체니 온천은 유럽 최대 규모 온천에 속합니다. 열수의 성분으로는 황산염, 칼슘, 마그네슘, 중탄산염 및 상당량의 메타산 및 불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다페스트 중심가에서 2.5km 정도 외곽에 위치한 시민 공원 내에 네오 바로크 양식의 고풍스러운 건물로 지어진 이곳은 온천이라고 하기보다 스파 시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합니다.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매우 뜨거운 온천수에서 몸을 담그고 여유를 즐기는 곳이 아니고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 몸에 좋은 물에서 수영과 물놀이를 즐기는 식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수영복을 착용하여야 하며, 수영복이나 타올이 없으면 유료로 대여도 가능합니다. 노천 온천을 즐길 수도 있고 풀 마다 온도가 다르므로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있을 수 있지만 실외 수영장은 27 ~ 38 °C 정도이며 실내 수영장의 온도는 18 ~ 38°C 이기 때문에 한국보다 평균적으로 낮은 온도라 할 수 있습니다. 헝가리인들은 친구/연인/가족들끼리 온천에 와서 물놀이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며 심지어 체스같은 보드게임도 가져와서 여유를 즐기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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